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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 대한민국축구 국가대표 토트넘 홋스퍼 FC No. 7 본문

- 보물 컬렉션/영재 이야기

손흥민 ❤ 대한민국축구 국가대표 토트넘 홋스퍼 FC No. 7

❤allure 2022. 11. 3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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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흥민 孫興慜 | Son Heung-min - 22-23시즌 쏘니

대한민국 국적의 토트넘 홋스퍼 FC 소속 축구선수. 주 포지션은 윙어이며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No. 7 C
토트넘 홋스퍼 FC No. 7


출생- 1992년 7월 8일 (30세) 강원도 휘장 강원도 춘천시 CI 춘천시 후평동
국적- 대한민국 
본관- 밀양 손씨의 종문 밀양 손씨 (密陽 孫氏)
신체- 키 183cm/ 체중 78kg / 255mm / AB형
학력- 가산초등학교 (전학) 부안초등학교 (졸업) 후평중학교 (전학) 육민관중학교 (전학) 동북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중퇴)
포지션- 윙어, 스트라이커, 세컨드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양발)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7

 

토트넘 홋스퍼 FC
유스 클럽
FC 서울 (2007~2008)
함부르크 SV (2008~2010)
프로 클럽
함부르크 SV (2010~2013)
바이어 04 레버쿠젠 (2013~2015)
토트넘 홋스퍼 FC (2015~ )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 106경기 35골 (대한민국 / 2010~ )
통산 득점-  220골
병역-  예술체육요원
응원가-  Nice One Sonny, Nice One Son, Lemon Tree

 

 


Heung-Min-Son-Sp...
2021-22 시즌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선두에 오른 직후의 모습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최초로 발롱도르 후보 30인과 FIFA FIFPro 월드 XI 후보 55인에 선정됐다. 또한 FIFA 푸스카스상을 수상했으며,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에 3회 선정되었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PFA 올해의 팀 선정 및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에 등극해 골든부트를 수상했다.

 


3. 생애


강원도 춘천시에서 태어났다. 2009년 U-17 국가대표팀을 거치고, 2010년 함부르크 SV와 4년 계약과 함께 역대 최고 수준의 초특급 유망주라는 립서비스를 받으면서, 해외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 10월 30일, 18세에 치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장식하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이후, 분데스리가 명문 구단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부터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면서 영입을 하는 등,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차세대 태극전사의 에이스로서 전세계의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28일, 이적료 3,000만 유로 / 2,200만 파운드 (한화 추정치 408억)를 기록하며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와 5년 계약을 확정지으면서 아시아 출신 축구 선수 중에서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아시아 역대 축구선수 선수가치 1위를 기록했었고, 9000만 유로까지 선수가치가 높은 선수였다.

이처럼 엄청난 활약으로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뽑혀 18세에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고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3골을 넣는 등 에이스로 활약하며 준우승까지 이끌었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또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전과 독일전에 연속 골을 넣으며 두 대회만에 한국인 월드컵 공동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주장을 맡아 금메달을 이끌었으며 이 활약으로 A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특히,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넣은 골과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부흥기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 중심에는 손흥민이 있었고 KFA 올해의 선수 6회 수상으로 최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2022년 6월 대한민국 역대 14번째 선수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다.

 


기록으로 봐도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발롱도르 후보, FIFA FIFPro 월드 XI 55인, PFA 올해의 팀 선정,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3회 수상, 아시아인 최초 유럽 빅리그 100골 돌파,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국적 선수 최다 골·최다 어시스트 등을 달성한, 대한민국을 넘어서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분데스리가에서 해트트릭 2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 프리미어 리그에서 1경기 4골을 포함한 해트트릭 3회, 5경기 연속 득점, 70M 드리블 골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골과 FIFA 푸스카스상을 수상하는 등 이게 정말 현실인가 믿기 힘든 업적과 장면들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21-22시즌 두 자리 수 득점에 성공하면서 유럽 빅리그에서 9시즌 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토트넘 통산 100골을 돌파한 최초의 비영국인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21-22시즌에는 리그에서만 23골을 넣으면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아시아 축구 역사에서 최초, 최고, 최다의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손흥민이 보여주는 득점력의 비결은 순도가 높은 골 결정력인데, 실제로 2016/17시즌부터 2021년 8월 16일까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5대 리그에서 골 결정력이 가장 좋은 선수이다.

그로 인해, 세계적인 축구게임 FIFA 22에서 아시아 역대 피파 오버롤 1위를 처음 달성한 것도 아니라, 경신했다. 손흥민은 FIFA 21에서 이미 87이라는 오버롤을 받으며, 아시아 역대 피파 오버롤 1위를 달성한 적이 있다. 2021년 9월 14일에 공개된 FIFA22 오버롤에서 작년에 받은 87에서 더 상승한 89라는 압도적인 오버롤을 받았으며, 결국 손흥민은 FIFA 22 오버롤 TOP22에 선정되었다. 따라서, 피파 오버롤로 봤을 때 호날두를 원톱자원으로 분류한다면, 네이마르에 이어 왼쪽 윙에서 2번째로 높은 오버롤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에선 단순히 축구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이다. 90년대 말 외환 위기 시기 국민들의 희망이 되어준 박찬호, 박세리 이후 2020년 코로나 시기에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2010~20년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스포츠 영웅 중 한 명이자 한국 축구의 아이콘, 나아가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셀럽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4. 프로 데뷔 이전

 

손흥민이 어린 나이부터 현재까지 이러한 엄청난 위업을 보여줄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가장 핵심은 그의 아버지 손웅정의 교육의 모토와 같은 '열린 교육'에 있다. 현재,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손웅정은 젊어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나 안타깝게도 1994년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이 마감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로 스페인, 독일, 브라질 등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유소년 축구를 접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손웅정은 춘천 FC를 창설했고, 승리에 목숨을 거는 축구가 아닌 '즐기는' 축구를 모토로 자기 자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특히, 차남 손흥민은 축구 선수 지망생들이 가는 축구교실을 안 가고 아버지의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직접 개인기와 탄탄한 기본기를 차근차근 익혔다.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혹독한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패스나 여타 다른 기술들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측면 공격수로 뛰는 프로선수였지만 선수 한 명 제낄 발기술이나 개인기가 전혀 없었다. 나 자신에게 굉장히 부끄럽고 후회가 됐다. 그렇기에 흥민이에게는 기본적으로 공을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기본기만 가르쳤다."
손웅정
한국 유소년 축구 시스템은 미국과 같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로 이어지게 되는 진학 시스템이다. 이로 인해, 이 시스템에서 좋은 커리어를 지니려고 한다면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과 같은 우승 타이틀을 손에 넣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흥민의 경우는 이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열린 교육에 대한 불필요한 환상은 금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손웅정은 축구 강국들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충분히 벤치마킹하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널리 보급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은 이런 즐기는 축구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아버지 손웅정의 엄청난 희생과 열정이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손흥민을 키워낸 열린 교육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버지 손웅정은 모든 힘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 축구 실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스포츠맨으로서 보여주는 올바른 자세와 인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참된 교육을 아끼지 않았다.

일례로 벤투 감독 부임 당시 손흥민은 일정상 한국에 있었는데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노한 손웅정은 아들을 불러 "국가대표팀 주장이라는 놈이 감독님이 새로 오셨는데 인사는 못 드릴망정 친구들하고 맥주나 마시고 있냐!"며 심하게 질타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러한 열린 교육 끝에, 결국 손흥민은 원주 육민관중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곧이어 재능이 점차 만개하기 시작했다. 축구 명문 동북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약 3개월 남짓만 뛰고 중퇴했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 SV 유스팀에 1년간 유학을 하고 돌아와 2007~2009년 이광종호의 일원으로 U-17 월드컵 대표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동북고 학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한축구협회의 청소년 대표팀 명단을 보면 소속란에 한동안은 함부르크로 기재되다가 U-17 월드컵 당시에는 동북고등학교로 기재가 되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에 고등부 선수 등록은 안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K리그 데이터 포탈에 손흥민이 서울 유스로서 등록되었던 점, 2008 SBS U-18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에서 서울 소속으로 등번호 26번을 달며 7경기에 나와 도움 1개를 기록한 것이 확인되는 점, 그리고 손흥민의 이적 시 동북고등학교가 연대 기여금을 수령하는 점으로 보아 동북고등학교 축구부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팩트이다. 손흥민 모교도 함박웃음, 연대 기여금 받는다

덧붙여 동북고 축구부와 FC 서울간의 유스 협약을 맺은 첫 해였고 동북고는 FC 서울과 유스 협약을 맺기 전부터 축구 명문고였기 때문에 손흥민이 FC 서울 유스 때문에 진학한 게 아니라 원래 축구 명문인 동북고를 보고 진학한 것이라고 독심술을 사용하여 손흥민의 생각을 추정해가면서, FC 서울과 손흥민의 관계를 애써 부정하려고 하는 여론도 있지만 손흥민 본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FC 서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기면서 종결되었다.  손흥민 10대1 인터뷰①"하트브레이커 춤? 내가 워낙 몸치라"
17세 대표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가 독일에서 멋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흐뭇하다. 흥민아. 네가 만약 K리그 클래식에서 뛰게 된다면 혹시 어떤 팀에서 뛰고 싶니. 이유도 알고 싶다. (윤일록·21·서울)

▶어려운 질문이네.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서울일 것 같아. 동북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이기도 해. 중학교 때까지는 혼자 하는 축구였는데 고등학교 와서 많은 것을 배웠어. 좋은 친구들도 많았어. FC서울은 내게 큰 팀이었다. FC 서울에서 뛰었다면 너와 함께 볼 차는 기회도 있었을 텐데.
손흥민이 FC 서울의 유스였다는 또 다른 증거는 이 인터뷰에 담겨있다. 

이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FC 서울의 홈경기에서 볼보이로 활동하며 이청용의 활약상을 봤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현재까지도 FC 서울의 볼보이는 FC 서울의 유스 선수들만이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손흥민이 FC 서울의 유스로 활동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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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시즌 데뷔 이전부터 소속팀 감독과 스태프 모두 극찬을 하였으며, 심지어는 같은 소속팀 동료이자 전설적인 축구 선수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마치 어렸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라면서 후계자를 삼는 듯한 발언을 몇 차례 했었다. 뤼트 판니스텔로이는 "나는 어렸을 때 지도해 줄 선배가 없어서 괴로웠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엔 자신이 선배가 되어서 손흥민을 지도해 주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부상 중에도 여러 가지 조언을 많이 하는 등 도움을 줬다고 한다. 지금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했으니 많이 흐뭇해 할 듯하다.

 

 


5. 손흥민 평가


손흥민 골든부츠 수상
아시아 최초로 EPL 골든부트를 수상한 손흥민.

명실상부한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이며, 2020년대 기준 세계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대부터 축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 하였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아시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선수다. 뿐만 아니라 손흥민이 클럽에서 보여준 개인 퍼포먼스와 스탯 등은 진작 아시아 평균을 아득히 넘었다고 평가받지만, 아직까지 주요 리그 및 대회에서 우승 커리어가 없다는 게 유일한 흠으로 지적받는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개인 커리어, 전성기의 고점, 누적, 꾸준함, 리그에서의 위상 등 모든것을 고려해보면 역대 다른 아시아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이기 때문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편이다.

아시아 선수 중 UEFA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등 유럽 5대 리그 통산 최다 득점과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발롱도르 11위, FIFA 푸스카스상 수상,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3회 수상, PFA 올해의 팀 선정, 유럽 빅리그 통산 150골 돌파 등의 굵직한 개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아시아 베스트 풋볼러 7회 수상, AFC 국제 선수상 4회 수상, AFC 아시안컵 베스트팀 등 아시아에서 주는 상들 역시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현역 아시아 선수들중 독보적이자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손흥민 한 명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넣은 골이 EPL에서 뛴 모든 아시아인 선수들보다 많을정도로 EPL 내 위상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리고 2021-22시즌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20골 이상을 기록하며 유럽 5대 리그 아시아 선수 관련 골 기록은 모두 손흥민이 가지게 되었다.

2018-19 시즌 이후 한준희 해설 위원은 차범근을 제치고 손흥민을 아시아 역대 No.1으로 뽑고 있다. 해당 시즌에 박지성에 이어 두 번째로 챔스 결승 무대에 오르는 한국인 선수라는 점도 높은 평가에 한몫하며, 손흥민은 아직 현역이기 때문에 향후 활약과 우승 유무에 따라 평가가 점점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2016-17 시즌부터 2021년 8월 16일까지 집계한 통계로는, 5대 리그에서 골 기대치 대비 골이 제일 높은 선수임이 밝혀졌고, 이 수치는 리오넬 메시, 엘링 홀란, 그리고 같은 팀에서 뛰고있는 해리 케인보다 높은 수치였다. 따라서, 손흥민의 골 기대치 대비 골은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6. 손흥민 TMI

[1] 한국식 로마자 표기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eu를 'ㅠ' 내지는 "'ㅣㅡ'" 발음으로 인식하고 '히응민 손' 혹은 '흉민 손' 등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 해설가들은 거의 손흉민이라고 발음하고 종종 독일어 철자법으로 그대로 읽을 시에는 호잉민 존이라고 하기도 한다.
[2] 착화신장. 실제 키는 이보다 1~2cm 정도 작다.
[3] 키에 비해 발이 작은 편이다.
[4] 축구부 입단을 위해 3학년에 올라가면서 육민관중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5] 육민관중학교를 졸업해서는 학적상 FC 서울과 유스 협약을 맺은 동북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어 뒤늦게 동북중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6] 1학년 1학기 5월에 독일로 떠나기 위해 중퇴를 했다. 함부르크 SV 유스팀 신입 시절에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었다고 한다. 1년 후 연수 기간이 끝나 유소년 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이때 학생 비자가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단은 정식 교육기관이 아닐뿐더러 당시 다니고 있던 학교가 없어 정말 어렵게 학생 비자를 발급 받았던 일화를 보아 독일에서 다닌 고등학교는 잠시 다니다가 졸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최종학력은 중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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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왼쪽, 오른쪽 다 수행 가능하지만, 후술하듯 양발이긴 하나 주발이 오른발에 더 가깝기 때문에 왼쪽을 선호하는 편. 따라서 소속팀이나 대표팀 모두 주 포지션은 왼쪽 윙어이다.
[8] 포체티노 감독 시절, 특히 18-19 시즌부터 투톱으로 출전하여 성과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또한 해리 케인이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에 나서지 않을 때에는 원톱 스트라이커 롤도 수행한다. 무리뉴 이전까지는 수비수에게서 등지고 돌아서는 플레이나, 수비수와의 경합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정짓는 역할밖에 맡기지 못했다. 이 점은 손흥민이 최전방 공격수로서는 전방에서 싸워주는 역할을 해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리뉴, 그리고 누누 감독 때부터는 아예 중앙 공격수로 출전하거나, 윙어로 출전하더라도 전형적인 윙 포워드보다는 오히려 케인과 함께 빅&스몰 투톱 형태로 자주 스위칭하여 중앙 공격수에 가까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감독과 파라치티 단장이 손흥민에 대해 어느 위치에서라도 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하며, 손흥민의 플레이 스타일이 점점 측면으로 넓게 벌리는 것보다 좀 더 안으로 파고드는 것에 적합하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9] 토트넘에서는 주로 왼쪽 윙어로 나서거나 혹은 해리 케인과 투톱을 이룰 때 케인보다 약간 처진 세컨 스트라이커로 뛰지만 최근 경기에서는 케인과 스위칭을 자주하는 편이라서 크게 구분하진 않는다.
[10] 가끔씩 해리 케인이나 다른 공격수들이 최전방 공격수에서 뛸 때 미드필더로 내려와 수비에 좀 더 가담하는 측면 미드필더로도 출전한다.
[11] 21-22 시즌 콘테 체제에서는 데얀 쿨루셉스키와 함께 3-4-2-1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지만, 좋은 찬스에서는 좌우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득점을 노리는 등 사실상 프리롤 포워드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12] 손흥민의 가장 큰 장점인 슈팅의 경우 강도와 정확도, 결정력 모두 양발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본인은 슈팅할 때 왼발이 더 편하다고 한다. 토트넘 100골 득점 기록을 보면 인버티드 윙어임에도 왼발 골이 42개일 정도. 그러나 드리블은 오른발 사용 빈도가 매우 높으며 세트피스는 아예 오른발로만 차는 등, 굳이 따지자면 주발이 오른발에 조금 더 가까운 편이다. 네이마르 주니오르나 우스만 뎀벨레 등 다른 양발잡이들이 드리블마저 양발을 고루 사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는 양발 모두 우수하지만 오른발을 더 능숙하게 잘 다루고 사용하기에 오른발잡이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3] 역대 한국인 선수 유럽 무대 최다 득점이다. 2위는 차범근의 121득점.
[14]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가 후원한다.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가 한국 성인 선수 중 직접 후원계약을 체결한 건 손흥민이 최초로, 이후 본사가 후원한 한국인으로는 이강인, 황의조가 있다.
[15] 토트넘 역사상 5번째로 70호 골에 도달. 프리미어 리그 역대 득점 35위

<출처-나무위키>

 

 

 

https://youtu.be/Q2tfwCRatUQ

https://youtu.be/Zsi8efzgdcI

 

https://youtu.be/4PMzQmf_zjM

 

https://youtu.be/wLxFyd6E2s8

 

https://youtu.be/d_BhCwNNiT4

 

<손흥민 이미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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